> Book Review > 원서읽기
이 책을 다 읽는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영어 독서 모임에서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책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그야말로 '정독'을 하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초반에는 단어 뜻 찾느라, 비호감인 캐릭터들에 적응하느라 적잖은 애를 먹었다. 돌이켜보면 1/4 지점까지는 이야기에 녹아들기 힘들었다. 책을 잘못 골랐나 걱정 되기도 했다.
엘리너는 이미지화 하기 힘든 캐릭터다. 만약 이 소설이 영상화 된다면 캐스팅 디렉터가 매우 힘들 것 이다. 그녀는 내가 이제까지 읽은 그 어떤 소설 속 인물들보다 다채롭다. 도무지 얼굴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인물과 굉장히 닮았다 싶다가도 금세 변신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더더욱 애착이 가고 사랑스럽다.
나는 엘리너가 테스코를 예찬하고, 바비 브라운 매장에 방문하는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레이몬드와 함께 하는 스콘과 커피의 카페도, 매그너스를 주문하는 펍도 좋다. 꼭 가본 것 만 같다. 레이몬드는 엘리너와 다르게 아주 정확하게 상상이 되는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같다. 그가 입은 티셔츠들 속 <브레이킹 배드>와 <더 와이어> 의 코드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엘리너와 레이몬드 두 사람의 우정을 쭉 따라가다 보면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두 인물의 캐릭터성 말고는 그다지 남는 것이 없다. 엘리너는 드라마틱하게 성장하지 않고, 레이몬드와의 관계도 로맨스로 진화하는지 정확하지 않다. 해피엔딩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단단해진 느낌이 들고 작은 희망감 같은 것이 싹튼다. <카모메 식당> 같은 잔잔한 힐링물이 연상되기도 한다.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헬싱키 어딘가에 갈매기 식당을 '두고 온' 것 처럼, 스코틀랜드 어딘가에 못생긴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엘리너 올리펀트라는 여자를 알지, 하고 슬며시 웃게 된다.
Little Fires Everywhere(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0) | 2020.12.24 |
---|---|
빅 리틀 라이즈 (0) | 2020.07.17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0) | 2020.07.03 |